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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육신의 사랑으로(20-22a)
선교는 사람(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과 호불호(好不好)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성육신의 정신을 심리/상담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면 '공감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예(머슴)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다(빌 2:7).
성탄의 숨겨진 영광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사 오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이런 성육신적 모범을 직접 보고 느끼진 못했지만, 심층 취재와 연구 및 기도의 몸부림 속에서 십자가를 체득했다. 인간을 향해 말을 걸어 오시고 그 고통을 귀담아들으시려는 하나님을 알았다.
예수님의 삶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분은 성육신의 최고봉으로 죽음의 지점까지 내려가셨던 '자기비움의 선교사'였다.
바울은 이런 예수님에게 완전하게 매료되었고 그분과 같은 삶과 부르심에 응답했다.
2. 경우에 맞는 태도(19, 22b)
만일 바울이 조선의 선비였다고 가정해 보고, 그가 회심한 후 성육신의 정신과 도리를 유학의 개념으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시중'(時中, 가장 때에 맞는 행동) 혹은 '극기복례'(克己復禮,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라는 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적절하게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현재 당면한 절실한 필요를 채울 뿐 아니라, 때로는 그가 잘 모를 수 있는 '참된 영적 필요'를 꿰뚫어 봐서 공급하는 것이다.
섬김의 과정에서 돌출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담대한 겸손'과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 자기 정체성이 선행(先行)한다면, 위축되거나 오해를 받아도 씩씩하게 계속해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
인정욕구, 남에 대한 과도한 의식 등은 상대방의 영적인 필요를 이해하고 분별하는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천의 얼굴을 할 정도로 유연하고 '여백의 미'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3. 복음 정신(23)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영역에서 통치하심을 믿고, 이 좋은 소식(승전보)을 선포(증언)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복음(막 1:15)에 사로잡혀 평생을 살았다.
복음에 이끌려 사는 삶이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 중심(기준)과 가치에 맞추어 자신의 모든 일상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
도한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랑의 길이와 공감의 깊이, 참여의 넓이와 따뜻함의 높이가 스며오고 마음이 떨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은 나에게서 번져 너에게로 퍼지고 숲을 이룬다. 겨자씨의 비유처럼(막 4:30-32), 밀알의 비유 말씀처럼(요 12:24-26) 사랑의 수고와 애씀 급기야 희생과 죽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민족에서 민족으로 이어진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소망하기 어려웠는지 기술해 보고, 인내하기 쉽지 않았던 상황도 이야기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