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당한 거래(10-13)
소국(小國) 이스라엘이 위대한(굉장한) 나라로 칭송 받게 된 것은 '공의로운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신 4:8). 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식적일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설날(春節)은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가는 신년(新年)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가는 해를 성찰하고 오는 해를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설계하며 소망의 언어를 나누는 것은 복된 일이다.
이스라엘은 공정한 거래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자비(헤세드)의 경제'를 공동체의 바탕에 깔았다. 하나님의 자비는 편을 드는 사랑이다. 이스라엘은 '은혜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특히 노예 생활의 비참함을 처절하게 겪었기 때문에 궁핍한 자가 돈을 꾸러 왔을 때 그의 겉옷이 유일하게 남은 담보물이라면 그냥 '묻지마 대출'해 주라는 것이다.
겉옷은 재산이자 밤의 추위를 막아주고 생명 유지를 위한 마지막 보호 장치였기 때문이다.
2.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조치(14-15)
구약의 세계관에서 보면 외국인(객)과 고아와 과부는 '여호와의 얼굴'이다. 보이는 형제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들을 홀대하거나 특히 생존권에 위협을 가하는 일은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극빈자인 품꾼(일용직 노동자)의 품삯(임금)을 체불하거나 강탈하는 것(학대, 14절)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소송하게 만든다. 하나님과 싸워서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부당한 임금과 불공정한 노동 조건은 불의한 사회 문제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짓는 죄다. 유럽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를 이루어 낸 운동은 기독교에서 비롯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다(렘 22:13). 신약에서도 야고보는 동일한 결기로 지적했다(약 5:4).
3. 남겨두는 영성(19-22)
이스라엘은 가족과 공동체를 샬롬(모두가 건강한)과 희년으로 충실하게 채워지도록 힘써야 했다. 왜냐하면 애굽살이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던 자유 없음과 하나님의 속량(출애굽)의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느꼈기 때문이다.
기억은 오늘과 내일의 삶을 더 새롭게 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부모님이나 사회나 교회가 우리를 위해 '남겨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주의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입니다.
현실 생활의 물정(物情)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돈에 대하여 어떤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이 있는지 각각 한 가지만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