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냐 법궤냐>
법궤는 이스라엘의 영적 생동감, 신앙의 근원성과 순수 신앙을 지키려는 진지함의 표현이다.
법궤 신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엄숙한 인정'(거리두기)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자유로우시며 인간의 원함에 의해 제한될 수 없는 '유목민적 유동성'을 가진 분이다.
성전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를 열망하는 '순수한 경건'을 반영한다. 그러나 성전은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치적인 이익(계산)도 들어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특정 공간에 영속화 하여 하나님이 떠날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의도도 있다.
<신앙이냐 이득이냐>
인간의 어떤 결정이나 행동이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 내면의 혼잡성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 때문이다.
성전 건축도 양면성이 있었다. '신앙의 고도화'에 대한 열망도 있고 '이기적인 합법화'의 의도도 깔려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 영성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고 결합하는 힘이 된다.
균형 잡힌 통전의 영성은 우리의 믿음을 공적인 삶의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경외와 찬양>
다윗은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신탁(oracle, 의사전달)에 응답하는 기도를 드린다. 여러 차례 하나님의 두려운 이름을 부른다(18-20절).
목동 소년에서 목자 왕으로 등극시켜 주심에 대한 감사의 존경, 깊은 고개 숙임이 나타난다. 자신의 미미함과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아차린 진심 어린 존경이다.
공로도 없고 가치도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헤세드(은혜로움)를 기도로 내재화 한다. '주체적이고 건강한 경건'은 죄책감이나 자기비하가 아니라, 그 무엇,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뛰어나심에 대한 인정이다.
낮았던 자가 높임을 받는 ‘새로운 일(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재구성된 삶이다.
<끈질긴 요구>
다윗은 대담하고 고집스러운 기도를 할 줄 알았다. 다윗의 과감성은 기질이자 형성된 성격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매 절마다 번이나 부른다(25, 26, 27, 28, 29절).
하나님 칭호를 수사학적으로 조금 과한 듯 표현하여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는 분이심을 보여주길 구한다.
이스라엘과 약속을 맺으셨기에 ‘그러면 이제’(25, 28, 29절 And now) 적극적으로 기대하겠다는 말이다.
<마음이 맞는 관계>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신 것은 그가 토라의 약속을 붙잡고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걸어왔기 때문이다.
다윗은 줄곧 하나님께 친밀하게 다가와서 약속 이행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이런 관계를 수용하여 허락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한다. 우리의 '순종'(하나님의 원하심에 대한)과 무조건적인 약속(선물)이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상호 관계의 핵심이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기도는 사람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담대한 기도'는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할 일과 우리가 할 일을 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단계에 이르고 있는지 기도 속에서 확인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