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14-26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 있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다(14절). 왜냐하면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17절). 행함과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귀신의 믿음과 같다(19절).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헛것이다(20절). 하나님을 믿는다면 행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약 3:1-12
성숙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정치적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다. 언어폭력이나 언론의 횡포는 멈추지 않는 악이며 사람과 조직을 죽이는 독침이다. 야고보서에 언명(言明)한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기본소득의 근거다. 인권을 넘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말하고 있다. 약자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약 3:13-18
독한 시기와 다툼(야심과 적대감)은 언젠가는 그 마각(馬脚)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야심은 정도(正道)를 짓밟고 진실을 외면한다. '선택적 정의'는 언론과 합작하여 고급 정보를 흘리고 여론재판으로 범인의 옷을 입힌다. 우리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야기한 황망한 죽음을 기억한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거룩, 평화, 관용, 긍휼을 가져온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생태적 리더십을 구한다. 편견과 거짓이 없는 지도력을 원한다.
약 4:1-12
세상성(부귀영화)에 물든 신앙은 영적 간음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 마귀는 욕심을 따라 사는 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은 고아와 과부를 선대하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탐욕과 폭력으로 힘없는 자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혐오했던, 피 묻은 손을 씻는 것이다. 처절한 참회로 애통해야 한다.
약 4:13-5:6
생명을 얻는 길은 '말하는 법'을 바꾸는 일이다. 자신만을 위해 비즈니스 청사진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끄는(driven) 시공(時空)을 먼저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허탄한 자랑은 개인과 공동체에게 치명상을 준다. 자기실현에만 몰두하려는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다. '나쁜 부자'는 허탄한 자기 자랑으로 악한 죄에 노출된 자이다. 쌓아 둔 자산들은 부지불식간에 녹아내린다.
약 5:7-12
억울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 오래 참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내하는 자는 복되다'는 것을 믿는가? 긍휼과 자비가 심판을 이김을 믿는가? 최근에 나는 무엇을 인내했는가? 우리는 진짜 인내했는가? 인내를 통해 검증된 리더십은 누구인가? 역사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들을 진혼(鎭魂)한다.
약 5:8-20
서로 죄 고백하는 것은 속죄제(정결제)의 신약적 계승이다. '새로운 시작'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자유의 시간'이다. 공동체는 욕심과 정욕으로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사망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다. 교회의 기도와 권면은 한 죄인이 저질렀던 수많은 죄를 덮어주는 시은소(施恩所)다. 교회는 재삼(再三)의 기회를 주는 곳이다. 따뜻한 예리함으로!